대화에 꼭 필요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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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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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 꼭 필요한 기술
- 날 짜 : 2016-04-29
- 찬 송 : 411장(통일 473장)아 내 맘속에
- 성 경 : 요한복음 4:25~30
- 요 절 :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5~26)
한 여인이 뜨거운 햇볕 아래 물동이를 들고 걸어갑니다. 대개 무덥지 않은 아침이나 오후 늦게 물을 길러 가는데, 이 여인은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일부러 나온 듯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우물가에서 한 유대인 남자를 만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증오하여 말 섞기를 거부했는데, 웬일인지 이 남자는 여인에게 마실 물을 부탁하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하여, 여인의 아픈 과거에 대해, 그리고 예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화를 마친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러 왔던 자신의 모습은 잊은 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달려가 외치기 시작합니다. 이제 여인은 더 이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부끄럽고 죄 많은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을 바꾸었을까요? 예수님의 명언 몇 마디였을까요? 사람은 몇 마디의 말로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상처가 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깊은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아마 뜨거운 햇볕을 감수하며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깊은 사랑과 배려는 누구에게나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여인은 정말 오랜만에, 아니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진정으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만났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눈빛과 음성은 마치 ‘내가 네 아픔을 다 이해한다’는 듯 들렸을 것입니다.
‘백아절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시대 진나라에 거문고의 달인 ‘유백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 하였고, 큰 강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마치 황하와 같구나!” 하며 백아의 마음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병을 얻어 죽고 말았습니다. 백아는 그의 무덤을 찾아 마지막으로 연주한 뒤, 그 자리에서 거문고의 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달콤한 화술이나 화려한 논리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아픔과 사정을 깊이 이해하는 넉넉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내 안에 있는지 돌아보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을 바꾸었을까요? 예수님의 명언 몇 마디였을까요? 사람은 몇 마디의 말로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상처가 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깊은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아마 뜨거운 햇볕을 감수하며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깊은 사랑과 배려는 누구에게나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여인은 정말 오랜만에, 아니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진정으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만났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눈빛과 음성은 마치 ‘내가 네 아픔을 다 이해한다’는 듯 들렸을 것입니다.
‘백아절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시대 진나라에 거문고의 달인 ‘유백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 하였고, 큰 강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마치 황하와 같구나!” 하며 백아의 마음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병을 얻어 죽고 말았습니다. 백아는 그의 무덤을 찾아 마지막으로 연주한 뒤, 그 자리에서 거문고의 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달콤한 화술이나 화려한 논리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아픔과 사정을 깊이 이해하는 넉넉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내 안에 있는지 돌아보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글쓴이 : 강양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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